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부친에 이어 총리를 지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가 지난 22일 심부전으로 도쿄의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26일 보도했다. 향년 90세.
1936년 도쿄에서 태어난 후쿠다 전 총리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마루젠석유에서 17년 7개월간 회사원으로 일했다. 이후 부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의 비서관 등을 거쳐 1990년 중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부터 모리 요시로(森喜朗)·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 약 3년 반 동안 관방장관을 맡았다. 냉정한 판단력으로 개성 강한 고이즈미 총리를 보좌하며 장기 집권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를 꺾고 제91대 총리에 올랐다. 이듬해 홋카이도 도야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주재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후쿠다 전 총리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그는 “두 번 다시 전쟁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회고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이런 신념 아래 후쿠다 전 총리는 한국·중국 등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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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회견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과는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에 나섰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정상회담을 했고, 같은 해 4월 도쿄 회담에서는 한일관계를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청년 교류 확대와 워킹홀리데이 제도 확충에도 합의했다. 당시 후쿠다 전 총리는 “협력해서 한일 신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중국과도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2008년 5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전략적 호혜 관계’를 포괄적으로 추진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이 역사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공동의 이익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선 어려움을 겪었다. 야당이 참의원 과반을 차지한 상황에서 제1야당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一郞) 대표와 대연정을 추진했으나 민주당 내부 반대로 무산됐다.
취임 약 1년 만인 2008년 9월 사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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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기자회견에서 ‘남의 일처럼 들린다’는 기자의 지적에 “나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당신과는 다르다”고 답한 장면은 오래 회자됐다. 2012년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떠났다.
짧은 재임 기간에도 소비자청 창설과 공문서 관리 개혁에 힘썼다. 중국산 냉동만두 중독 사건 등을 계기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연금 기록 누락 문제 등의 교훈을 바탕으로 국가 기록 관리 체계를 정비하려 했다. 그가 추진한 공문서관리법은 퇴임 이듬해인 2009년 중·참의원 만장일치로 성립했다.
퇴임 뒤에도 중일 관계의 막힌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양국 관계가 악화하자 이듬해 7월 중국을 비공개로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같은 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일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물밑 외교에 나섰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26일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식견으로 수많은 어려움에 힘을 다해 대처했다”며 애도했다. 장례는 가까운 친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으며 추후 정식 장례가 열릴 예정이다. 상주는 장남인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 중의원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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