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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간 삽을 들고 땅을 파제끼며 근방을 돌아다니던 낯선 이방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동네 농부들은 그가 고른 땅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여기는 포도를 심어봐야 소용이 없어. 저기 저 언덕 위에서 사슴만 뛰놀다 갈 뿐이라고.”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그때까지 그는 미국 동부 대도시 시카고의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한 학자였습니다. 농사와는 거리가 먼, 그저 책상머리에서 답을 찾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워렌은 그날, 땅 위에 현대저축은행 채은혜 선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황무지에 불과했던 그곳에서, 그는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본 것입니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아무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사슴만이 뛰놀던 언덕에 첫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날 워렌의 선택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절대’에 우리은행 대한 의문, 그리고 집요한 실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해마다, 심지어 하루하루도 달라지는 땅의 표정과 바람의 흐름을 읽었고, 자신의 포도밭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택스 립(Stag’s Leap·숫사슴이 도약한 곳) 와이너리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에 빠져 살던 ‘이론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포 연차수당계산기 도나무가 자라게 된 것일까요?
내파 밸리에 위치한 스택스 립 와이너리의 포도밭. [스택스립 와인셀라 홈페이지]
괴짜 철학자와 개척자의 집념이 얽힌 곳
신한은행직장인 스택스 립은 와인프릭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바로 그 ‘파리의 심판’의 주인공입니다. 프랑스 와인을 꺾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상징적인 와인이죠.
스택스 립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두 개의 탁월한 포도밭입니다. 하나는 S.L.V., 그리고 또 하나는 FAY라고 불립니다. S.L.V.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란 단어 그대로 스택스립 포도밭(Stag’s Leap Vineyard)이라는 뜻인데, FAY는 무슨 뜻일까요? 이 밭의 이름은 나단 페이(Nathan Fay)라는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1961년, 내파 밸리에서 아무도 까베르네 소비뇽을 심지 않던 시절에, 이 나단이라는 괴짜가 맨손으로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FAY 포도밭이고, 사실상 내파 밸리 까베르네 소비뇽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동네 농부들이 비웃던 그 땅, 지금의 S.L.V.를 워렌 위니아르스키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워렌이 나단 페이가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까베르네 소비뇽을 한 잔 맛보고, 그 한 잔에서 이 땅의 가능성과 미래를 본 겁니다.
농부들의 웃음소리 뒤에는, ‘이렇게 깊고, 우아하고, 강렬한 와인이 내파 밸리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미 한 번 가능성을 증명해낸 선구자의 땀과 집념이 숨어 있었던 셈입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에서 생산하는 와인 종류. 왼쪽부터 FAY, S.L.V. CASK 23, ARTEMIS, KARIA, AVETA. [스택스립 와인셀라 홈페이지]
이겼다고? 그래서 뭐? 안주하지 않는 집요함
그리고 워렌의 탁월한 안목은 생각보다 일찍 빛을 발합니다.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의 심판’ 사건이 벌어지면서 입니다. 파리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와인프릭 <“애송이에게 우리의 자존심을!?”...와인 한 잔에 매국노가 된 사연>편에서 즐기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스택스 립 1973 빈티지는 프랑스 와인 업계의 거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와이너리가 생기고 불과 4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워렌은 자신의 와인이 우승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겼다고? 난 그저, 이 땅의 가능성을 믿었을 뿐이야.”
바로 여기에 스택스 립의 진짜 매력이 있습니다. ‘절대’에 안주하지 않는 집요함입니다. 워렌은 늘 실험을 했습니다. 포도밭의 미세한 경사, 바람의 방향, 토양의 미묘한 차이 등등. 이 모든 것이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년 기록하고 비교하고 다시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무수한 실험 속에 탄생하게 된 게 바로 스택스 립의 현재 플래그십인 CASK 23 입니다. CASK 23은 파리의 심판에서 1등을 하고 바로 다음해인 1974년, SLV(Stag’s Leap Vineyard)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 중 한 배치(batch)가 특별히 뛰어나 별도로 선별·숙성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 배치가 숙성된 오크 캐스크(23번 통)에서 이름을 따 ‘CASK 23’이란 리저브 와인이 처음 출시된 것입니다. 배치는 포도를 수확해서 한 번에 압착·발효·숙성하는 과정을 거친 동일한 생산 단위입니다.
예컨대 1974년 SLV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여러 개의 오크통(캐스크)에 나눠 담아 숙성시켰을 때, 각각의 오크통에 들어간 와인은 모두 ‘1974년 SLV 배치’에 속하지만, 오크통마다 미묘한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포도밭. [스택스립 와인셀라 홈페이지]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완벽한 균형
워렌이 안주하지 않고 이토록 집요하게 도전했던 것에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습니다. S.L.V.와 FAY는 실제로 서로 면을 맞대고 있음에도, 토양이 전혀 다른 기질을 가졌는데요. 이런 특성 때문에 바로 옆에서 생산된 같은 까베르네 소비뇽인데, 전혀 다른 특징을 가졌습니다. 마치 음과 양, 태양과 달처럼요.
실제로 S.L.V.는 화산재와 자갈이 섞인 척박한 토양이어서, 이곳의 포도는 강렬하고 스파이시하며 미네랄이 살아 숨쉽니다. 반면 FAY는 충적토로, 부드럽고 섬세하며 바이올렛과 라즈베리의 아로마가 꽃처럼 우아하게 피어납니다.
철학자였던 워렌은 전혀 다른 두 포도밭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두 밭의 장점을 결합해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결국 1986년 워렌은 아예 나단 페이로부터 그의 밭을 통째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매년 두 밭을 실험실 삼아, 조금씩 블렌딩 비율을 바꿔갑니다.
그리고 1987년부터 스택스 립의 플래그십 와인인 CASK 23은 S.L.V.와 FAY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생산됩니다. CASK 23은 이웃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완벽한 균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수십 년의 실험과 실패, 그리고 집념의 역사가 살아 숨쉽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에서 만드는 와인의 라벨에는 항상 숫사슴을 찾을 수 있다. [스택스립 와인셀라 홈페이지]
안티노리의 인수, 새로운 도전의 시작
2007년, 스택스 립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탈리아의 명문 와이너리인 안티노리(Marchesi Antinori) 가문과 미국의 생 미쉘 에스테이츠(Ste. Michelle Wine Estates) 공동 인수에 나서며, 구세계의 전통과 신세계의 실험정신이 한 지붕 아래에서 만나게 되면서 입니다.
안티노리 가문은 이탈리아에서 26대째(600년 이상) 이어지며 와인을 만들어온 집안입니다. 그들이 스택스 립에 가져온 것은,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집념’이 아닐까요. 스택스 립의 와인들은 포도밭 관리부터 숙성 방식, 블렌딩까지, 구세계의 노하우와 신세계의 실험정신이 결합되면서 독특한 색채가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스택스 립의 진짜 매력은, 바로 옆에 자리한 S.L.V.와 FAY 포도밭이 완전히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같은 햇살, 같은 바람 아래서도 토양과 미세기후의 미묘한 차이가 와인에 전혀 다른 표정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같은 자리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더라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확실하게 갈렸습니다. 가장 먼저 내파 밸리에 까베르네 소비뇽을 심은 FAY, 파리의 심판에서 역사를 다시 쓴 S.L.V., 그리고 이들의 좋은 점만을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모아낸 CASK 23. 물론 모두 최고의 와인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황무지에서 시작된 집념, 두 괴짜의 실험과 실패, 그리고 땅과 시간, 인간의 호기심이 켜켜이 쌓여 있는 스택스 립을 마신다는 것은 어쩌면 단지 와인을 음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수십 년간의 도전과 변화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내파 밸리의 미스터리까지 함께 경험하는 일이 아닐까요.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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