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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전남 화순(和順). 화순은 풍속이 화순한 것이지 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인심은 질박해도 지세는 험준하다. 무등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대해에서 물결쳐 오는 파도처럼 호남정맥의 산맥과 준령들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은 중소기업진흥원 자줏빛으로 물들고 물은 맑아 풍광이 빼어나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들 말이다. 들어가 보면 산과 산 사이, 농토라는 것이 개천 양옆으로 손바닥만 한 것들이 고작이다. 곡식은 궁하고 삶은 가난했다. 화순에서 쌍봉사 거쳐 보성 넘어가는 예재, 덕유산에서 남으로 빨치산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예재 서편, 산자수명한 화순 이양이 문화재 복원 전문가 차병갑 남양주별내지구쌍용예가 (73)씨의 탯자리다.
아버지는 흐릿한 기억뿐, 홀어머니 밑에서 4남매 장남으로 자랐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마치고 월사금이 없어 중학교에 못 갔다.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날일을 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싶었는데 학비로 내는 ‘속수’(束脩)가 쌀 한 말이다. 들에 나가면 벼 이삭은 드물고, 보리 이삭은 더러 있어, 보리 한 말을 ktf통신요금 주워 모아서 들고 갔다. 공자님 같으면 가르쳤을 것을, 보리는 안 받는다고 야박한 훈장이 퇴짜를 놓았다.
“어머니가 이러다가 머슴뿐 더 되것냐고, 대처로 나가라 하십디다. 광주 유동 자개농 짜는 집에서 얼마간 일을 했어요. 날마다 옻칠을 하니, 손가락 사이 하며 온몸에 옻이 올라 더는 못 하겠데요. 그해 추석에 그만두고 집에 있는데 목포 개인회생파산 에서 표구 일 하는 동네 형님이 너 서울 갈래, 하길래 그 길로 따라나섰어요. 상경 전날 밤에 어머니가 그러십디다. ‘니 아버지는 입산했다,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라’고.” 1968년 16살, 늦가을이었다.
그 무렵, 서울 인사동은 성시를 이뤘다. 일제강점기 몰락한 양반들의 골동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큰 장이 섰던 인사동은 부침을 거쳐 대출사유 1960년대 중반 들어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는다. 요즘 뜨는 곳에 카페 생기듯이, 하루가 다르게 화랑과 고미술, 지필묵, 표구점 등이 들어서면서 장거리를 이루던 때다. 그는 어느 표구점에 첫발을 들였다. 주인은 본체만체, 오라 가라 말이 없다. 청소하고 눈칫밥 얻어먹고, 점포 탁자 밑에서 열흘 밤을 지새우고, 떠나려는 아침에 주인이 하는 말, “너 일 안 하고 어디 가냐?”, 그 기쁜 소리에 취직이 되었다. 표구점으로 유명했던 ‘동산방’ 박주환 선생 밑에서 도제식으로 일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안 쫓겨날까, 생각해 보니 거짓말을 안 하는 것, 농땡이 안 부리는 것, 딱 두가지요. 정직과 성실로 버텼습니다. 화선지 배접하고, 액자 족자 병풍 만들고, 그것 배달하고 했지요. 내 손으로 작품을 만진다는 사실이 꿈 같았어요.”
12년 일하고 돈을 모아 수도약국 옆 꺾어진 길에 ‘차가방’이라는 간판을 걸어 독립했다. 8평(약 26㎡), 월세 40만원. 마음속에 좌우명을 하나 걸었다. ‘남이 못 하는 것 내가 한다!’ 1980년 28살, 봄이었다.
의정부 홍씨 가문에서 무관 벼슬을 지낸 조상 영정을 들고 인사동을 찾았다. 영정은 비단에 전신 좌상인데, 습을 먹고 갈라지고, 찢기고, 선과 색이 절반이나 날아가 버렸다. 다들 엄두를 못 내고 손을 내저었다. 혹시 그 집 가보라 해서 찾은 곳이 차가방. 그는 닷새, 날을 새고 코피를 쏟았다. 약속한 날 홍씨들이 보더니,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약정 40만원에 5만원을 얹어 주고, 담배 한보루에 쇠고기 두근을 사주었다. 죽은 사람 하나는 살려야 ‘명의’ 소리를 듣는 법, 이 소문이 인사동에 짜하니 돌았다. 이 일을 기화로 이 바닥에서 자리를 잡았다. 당시 50만원이면 대학 등록금인데 매달 주문이 100만원을 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람 뽑는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스승을 찾아가 천거를 부탁했다. “거기 한시직이야. 벌이도 시원찮고. 자네는 이 사람아 완전히 자리 잡았는데 뭐하러 가나.” 그러기를 일곱번, 기어이 소개장을 받아냈다. 인사동에서 표구점 점원으로 12년, 점주로 7년, 근 20년 흘렀다.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딴 이듬해, 그는 인사동을 떠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겼다. 1987년, 35살 겨울이었다.
공무원인 줄 알았는데 일용직이었다. 1년 지나 기능직 10급이 되고 보니, 첫 월급이 14만원. 이외수가 말한 ‘존버’(끝까지 버티기)의 세월이다. 국졸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신설동에 달방을 얻어 야간학원에 다녔다. 그해 검정고시에서 중졸 자격을 따고, 2년 뒤 고졸 자격을 얻었다. 1997년 방송통신대 일본어과에 입학하여 5년 만에 졸업했다. 10년 뒤 공주대 대학원 문화재보존학과에서 ‘조선 후기 김인신 초상화의 보존과학적 연구’ 논문을 쓰고 석사가 되었다. 2003년 별정직 7급으로 승진했다. 2015년 별정직 5급, 학예연구관으로 정년했다. 공무원으로 28년, 호적으로는 60살이지만 실제로는 62살 봄이었다.
그 잘나가던 인사동을 왜 떠나셨냐고 물었다. “내가 인사동을 안 떠났으면 돈은 많이 벌었겠지만, 국졸로 끝났을 겁니다. ‘황금 백만냥 있어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라는 안중근 선생의 작품도 있잖아요. 돈은 손에 쥐고 있는 모래 같은 것, 손을 펴면 다 흘러버리고 없어요. 공부는 죽을 때까지 남잖아요. 못 배운 것이 한이었습니다. 표구 일한 사람 중에 내가 첫 공무원이고, 정년까지 한 사람도 내가 처음입니다.”
일용직 시절에 독립기념관에 파견 나가 이순신 영정 복원 일을 했다. 그쪽에서 솜씨를 알아보고 기능직 6급에 일본 연수 1년의 특채를 제안했는데, “나를 미술관에 천거한 사람 얼굴에 떡칠하는 것 같아서” 거절했다.
수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복원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이 찍힌 서예 ‘독립’(獨立)도 그중 하나다. 2009년 서예박물관에서 ‘안중근 100주년 친필유묵전’을 할 때, 벌레 슬고 좀먹어 엉망이 된 이 작품을 온전히 복원했다. 또 춘향 초상, 백양사 신중탱, 월정사 괘불, 이중섭 편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진관사 칠성각 보수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덧칠한 태극기와 독립신문, 다 삭아 헤어지고 바스락거리던 것들이 그의 손을 거쳐 보물이 되었다.
복원은 의사가 환자 치료하는 일과 같다고 한다. 지(紙) 천에 견(絹) 오백이라, 종이는 천년을, 비단은 오백년을 간다. 그 세월 동안 사라진 옛 흔적을 되살리는 일. 먼저 원본 한지나 비단의 끊어진 부분을 물에 불리면 가느다랗게 섬유질 가닥이 뻗어 나오는데 그것을 새 재료의 섬유질들과 잇는다. 말 그대로 신경 봉합 수술이다. 그 위에 채색을 한다.
“작가는 선을 긋지만 우리는 점을 찍어요. 그냥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단의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바늘 끝 같은 세필 끝으로 점을 찍습니다. 한번은 묽게, 한번은 연하게, 한번은 배색에 맞게 최소한 세번을 찍어요. 올의 교차점이 안 보이니까 루페(확대경)를 끼고 하는데 영락없이 외과의사 수술 장면처럼 보이죠. 1만원짜리 면적에 수만번 점을 찍으면, 어느덧 되살아난 탱화 부처님이 웃고 있어요.”
이 모습이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 나온다. 동양화 복원 전문가로 나오는 배우 김래원이 세초, 색잡기, 덧씌우기 기술을 선보이는데 그가 두달을 가르쳤다 한다.
1991년 유명한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이 터진다. 지난 4월 항소심 재판이 열렸으니, 30년 넘는 긴 논쟁이다. 검찰의 진품 판단에 대한 유족의 소송인데 원고 패소했다. 이 논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그는 지나가는 소리라면서 한마디 했다. “과학은 모르지만 우리는 보면 알아요. 1977년 당시 작가 호당 가격이 얼마 안 했어요. 누가 가짜 소주를 만듭니까, 가짜 양주를 만들지. 그림은 뒤를 보면 거짓말 못 합니다. 어느 표구점의 누구 솜씨인지, 배접지 3장마다 치수를 기재해 놓았는지, 이 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그냥 알아요.” 위작 사건 이후로 그림값이 엄청 올랐는데, 세상일이 그런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차병갑은 공직 은퇴 이후 명지대 대학원 문화재보존관리학과 주임교수가 되었다. 서울대, 중앙대, 용인대 등에 강의를 나가고, ‘도담문화재보존연구소’를 차려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일은 수전증이 오면 끝이라, 평생 술자리마다 딱 한잔 마셨는데, 이제 머잖아 일을 접고 화순에 내려가면 술도 좀 마시고, 마음껏 노래 부르고 드럼도 치면서 살 계획”이라고 했다.
열여섯에 고향을 떠나 어느덧 한 갑자가 돌아간다. 한눈팔지 않고 방일하지 않고 일이관지 살아왔다. 그의 한 생이, 결이 가지런한 닥나무 한지 같다.
이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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