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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 화제가 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K-Pop Demon Hunters)’. 케이팝 아이돌과 팬덤은 물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호평받는 작품이죠. 중독성 강한 OST는 덤이고요. 미국을 포함한 41개국에서 영화 부문 1위에 오른 이 작품이 뜻밖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건축물 저작권’이라는 낯선 용어와 관련된 이슈인데요.
발단은 작품의 아트디렉터가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메시지였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남산타워 저작권 허가를 얻어서 백만배는 수월했습니다…보고있니 롯데타워?” 롯데월드타 올크레딧 워를 작품에 등장시킬 계획이었지만 저작권 문제를 해결 못 해 남산서울타워로 바꿨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글이죠(해당 아트디렉터의 계정은 현재 정지된 상태입니다).
이 게시글은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갖가지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글로벌 히트작을 알아보지 못한 롯데는 감이 없다’는 반응 외에도 ‘아마 사우론의 탑처럼 묘사됐을 텐데 거절할 수밖에 차입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죠. 작중 남산서울타워는 악귀들의 주요 활동무대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롯데월드타워를 소유하고 있는 롯데물산 관계자는 “해당 작품으로부터 어떤 문의도 받은 적이 없으며 저작권을 이유로 영상 활용을 제한한 바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영상물 촬영이나 CG 빌라대환대출 활용 요청이 들어올 경우 별다른 제약 없이 협조하고 있으며 무단 사용의 경우에도 상업적 이용이 아니면 문제 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물산
비록 해프닝 부채조회 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이 사건은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낯설었던 ‘건축물 저작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건축물의 저작권은 엄연히 법으로 보호받는 권리인데요. 저작권법은 ‘건축물 및 건축을 위한 모형이나 설계도서’를 건축저작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건물 자체는 물론 설계도와 모형까지도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다만 모든 건물이 보호 대출시장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창작성’이 인정되어야 하죠.
법조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아파트나 주택 등은 기능 위주의 반복적 구조물이라 창작성이 부족해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반면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63빌딩과 세빛둥둥섬, 남산서울타워처럼 독창적인 설계와 디자인을 갖춘 건축물은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있죠. 실내 건축이나 정자, 전시장, 가설 건축물도 독창성이 돋보인다면 보호 대상이 됩니다.
저작권법 전문가인 오승종 법무법인 비트 고문변호사는 “저작권 침해 여부는 ‘실질적 유사성’ 기준으로 판단된다, 이는 모방한 작품에서 원작의 본질적 특징을 일반 감상자가 직접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저건 남산서울타워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바로 알 수 있다면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축물 저작권이 법조문 속에나 등장하는 개념이 아님을 보여주는 판결이 2년 전에 내려졌습니다. 부산 기장의 유명 카페 ‘웨이브온 커피’ 사건인데요. 독특한 설계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 카페 측은 “울산의 한 카페가 우리 건물의 설계를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죠.
2016년 건립된 부산 기장군 ‘웨이브온 커피’ 카페 전경. 이뎀건축사사무소
이에 지난 2023년 법원은 울산 카페 측에 배상금 지급과 함께 철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국내 건축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진 것은 처음이었죠. 이 판결은 국내 건축물 저작권 인식의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건축물을 등장시키는 것도 문제가 될까요? 이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저작권법은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되어 있는 저작물’에 대해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건축저작물도 포함되죠.
남산타워처럼 24시간 365일 항시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는 건축물은 원칙적으로 그림이나 사진 등으로 복제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판매를 위한 경우는 허용되지 않고, 또 ‘동형 복제’도 안 됩니다. 즉 법적으론 남산서울타워를 무단으로 촬영한 사진을 판매해선 안 되고, 똑같은 건물을 만들어도 안 되는 것이죠. 앞서 소개한 부산 카페 사례처럼요.
지난 2023년 서울 용산구 남산서울타워에 그룹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보랏빛 조명이 켜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여기에도 예외가 있는데요. 남산 전경을 촬영하면서 배경에 자연스럽게 남산서울타워를 등장시키는 것은 ‘부수적 이용’으로 허용됩니다. 오 고문변호사는 “부수적 이용이란 다른 피사체를 중심으로 촬영하는데 우연히 배경에 건축물이 등장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며 “남산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남산타워가 배경으로 나올 수 있고, 광화문에서 촬영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뒤에 나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건축물이 작품의 핵심 소재가 되는 경우인데요. ‘케이팝 데몬헌터스’에서 남산서울타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악귀들의 주요 활동무대로 등장하며 상당한 분량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부수적 이용이라 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죠.
영상물에 등장한 건축물의 저작권을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뻔한 사건이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한 기업이 영상 광고에 스타벅스 매장 건물의 이미지를 무단 사용했고, 설계자가 이를 문제 삼은거죠. 이 사건은 법적 분쟁까지 갈 뻔했지만 양측 합의로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기업 측이 설계자에게 사용료와 함께 무단 사용에 대한 배상까지 했죠.
건축물 저작권을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뻔했던 스타벅스 상도역점 전경. Hsplan건축사사무소
해당 스타벅스 매장 건물을 설계한 김경훈 Hsplan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아직 국내에선 건축물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 보니 별 생각없이 건축물의 설계를 가져다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악의 없이 부주의로 인한 실수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배상을 통해 합의해 나가다 보면 점차 저작권 인식도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건축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건물도 예술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낯설었고 관련 법적 분쟁도 드물었죠. 하지만 앞선 사례들처럼 최근 법적 분쟁이 늘어나며 점차 인식이 확립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건축물 저작권 분야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실질적 유사성’이라는 판단 기준이 불확정적이라는 점이죠. 오 고문변호사는 “창작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건축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권 침해를 예방하려면 신중한 법적 검토가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미지. 넷플릭스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건축물 저작권은 점차 중요한 쟁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한국의 독특한 건축물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관련 분쟁 가능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번 ‘케이팝 데몬헌터스’ 사건은 비록 해프닝이었지만 건축물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 정비 필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고 지나치는 건물 하나하나도 누군가의 창작물이자 보호받아야 할 예술작품일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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