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맹정음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묘소가 마침내 고향인 강화 교동도로 옮겨졌다. 사유지에 둘러싸여 진입과 참배에 어려움이 이어졌던 묘소가 6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오랜 시간 이전을 바라온 유족과 시각장애인계도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24일 오전 7시쯤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옛 교동교회 인근.
아직 여명이 채 밝아오기 전 시간이었지만, 박두성 선생의 묘가 안장될 교회 옆 터는 열띤 분위기였다.
전날 선생과 부인 김경내 여사의 유해를 수습한 작업자들은 땅을 다지느라 여념이 없었고, 굴착기는 주변 잡목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인천일보 10월 23일자 온라인판 '[르포] 63년 만의 마지막 배웅…송암 박두성 선생, 수산동 떠나다'>
장손 박현재 씨는 조부모의 새 안식처가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을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 채 지켜봤다. 박 씨는 뒷짐을 진 채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심정이 어떠시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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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나는 여기만 오면 시골에 오는 느낌이다. 그만큼 정겹고 그립다"며 "옛날에 여기(선생의 묘소가 만들어진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잔치도 하고 그랬다"고 돌아봤다.
새 터전인 교동교회는 선생의 부친이 생전 밭을 기증하는 등 박 씨 일가가 각별한 정성을 쏟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교동도 앞바다와 함께 박 씨 가문과 상용리 주민들이 살았던 터전이 펼쳐져 있다. 세월이 흘러 주민들이 모두 떠난 자리는 한적한 바닷가로 남았지만, 그에게는 할아버지와의 유년 시절 기억이 온전히 깃들어 있는 공간이다.
작업 개시 1시간여 만에 묘터 중앙에 광중(관을 안치하는 무덤 구덩이)이 반듯하게 파였다. 그 속에 붉은색 십자가가 수 놓인 흰 천으로 감싼 두 관이 나란히 놓였다.
이윽고 박 씨는 조부모님의 관에 흙을 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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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때 마음속으로 "좋은 고향을 물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는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박 씨의 남동생도 안장이 진행 중인 새 묘소에 찾아와 현장을 지켜봤다. 그에게도 할아버지는 "맹인을 위해 늘 헌신했던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는 "옛날에 할아버지를 도와 。자문을 인쇄한 적이 있다"며 "저 멀리 있는 동인천에 가서 맹인들을 모셔오라고 했던,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묘역 조성 작업은 이날 오전 10시쯤 모두 마무리됐다. 그의 새 묘소 앞에는 묘비가 우뚝 섰고, 그 곁에 노산 이은상 선생의 추모시비와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2002년 4월 문화인물' 기념비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한동안 유족들과 작업자, 시각장애인 단체 관계자들 간에 "수고했다"는 격려가 나왔다. 고향 땅으로 선생을 모셔야 한다는 오랜 숙원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박현재 씨는 "기분이 좋다. 10년 전부터 소원이었다. 이제야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다"며 "할아버지께서도 드디어 고향에 왔으니 더는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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